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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다니는 교회... 그리고 다시 기도하고 생각해보는 함께 잘 다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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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의 한인 장로교회를 다닐때의 일이다.  담임 목사님이 강단에서 당시 휴스턴 시장인 민주당 출신의 애니스 파커 (Annise Parker) 동성연애자인 것을 두고 휴스턴이 사단의 도시가 되었다고 한탄을 하며, 어떻게 이런 동성연애자가 시장이 있냐고 역정을 내며, 파커시장의 재선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교를 하였다하지만 목사님의 기도가 부족하였는지,  당시 파커 시장은 뛰어난 시정운영과 휴스턴 시민들의 고른 지지로 재선에 무난하게 성공했고, 작년에는 3선까지 성공했다.  2003년까지 동성애 처벌이 합법적이었던 (Lawrence v. Texas - 539 U.S. 558 (2003)) 보수적인 텍사스 임에도 불구하고 , 공화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텍사스,  심장인 휴스턴에서 민주당 출신의 여성시장이  3선에 성공한 것은 그녀가 얼마나 탁월한 시정운영을  왔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Source: http://newdealleaders.org/newdeal-leaders/annise-parker/

   


나는 여기서 동성애가 혹은 동성간 결혼이 종교적으로 죄이다 아니다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굳이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라면, 나는 모르겠으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최근 미국내의 여론의 50프로 이상이 동성결혼을 찬성하고 있고, 2014 현재 50개주 , 17주가 동성간 결혼을 허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성연애 혹은 동성간 결혼이 죄라고 혹은 사단이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작년에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는 동성 결혼 차별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동성간 결혼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오마바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어느날 딸이 우리 부부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 친구 제이슨(가명)집에 놀러갔더니 아빠는 없고엄마만 두명있었어여자끼리 결혼할 수도 있는거야?”  그런 동성 결혼 커플의 아이들이랑 어떻게 같이 놀게 있냐고 정색을 하고 말하던 한인 교회분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딸에게 여자와 여자, 혹은 남자와 남자간에 서로 사랑해서 결혼 수도 있고, 그러한 가정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이야기 주었다.   휴스턴의 목사님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파커시장의 면전에서도 당신이 동성연애자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사단의 앞잡이이다 라고 말할 있겠느냐고웬지 그 목사님은 믿음이 부족하실 같다


“When you judge another, you do not define them, you define yourself.”  ― Wayne W. D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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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공부를 사역자 없이 하는 성경 공부는 참가자들을 잘못된 성경 해석이나 이해로 인도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최근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분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웬지, 낯설지가 않은 어디서인가 많이 들은 내용이다. 학업과 취업으로 다녔었던 몇군데의 한인교회에서 신기할 정도로 똑같이 들었던 말이다.  그러면서 신학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만 성경공부를 하게되면 신천지같은 이단에 빠질 수도 있다면서 교회 밖에서 하는 성경공부 모임은 목회자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보고를 해야하며, 허락하지 않으면 없다라고 말한다. 목회자가 지정하는 교재로 목회자의 인도하에서만 성경공부를   있다라는 말을 하는 분들은 반드시 목회자만이 아니다.  많은 신도들 조차 이렇게 생각하며 당연시한다.  

돌이켜보면 중세 로마카톨릭 교회 (구교) 부패하게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지 않았었나? 특정 계층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가르칠 있다는 , 그리고 특정 계층이 아닌 사람들은 성경을 함부로 읽고 공부하고 해석할 없다는 결국 이로 인해 성직자 계급은 타락하고 중세교회는 몰락하고, 프로테스탄트(신교) 발흥했다벌써 500 전의 일이지만, 미국내 한인교회에서는 신학공부를 사람 만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있었던 중세의 로마 카톨릭 교회시대에 갇혀 사는 같다.


3
년의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지식만으로 이제는전문가행색을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성도들은 스스로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부하고, 저명한 신학저작들을 읽고 토론한다.   3년만 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졸업후 이상 연구하지 않는 사역자와 평생에 걸쳐 꾸준히 성경을 공부하는 평신도 성경에 대한 해석의 권위는 누구에게 있을까하나님과 사이, 성경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종교개혁 시대의 ’Sola Scriptura (오직 성경)’ 새롭게 들린다성경 자체를 마주하고, 읽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아닌가? 성경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 중간을 가로막고 전문가행세를 하는 그들은 누구인가억압받는 서민들을 위로하는 프란체스코 교황을 바라보며, 미주의 한인교회가 500년전의 구교, 로마카톨릭교회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이글은 미주 중앙일보, LA기윤실 '광야의 소리'에 실렸습니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455437 




양을 둘러 맨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AP 뉴시스

http://well.hani.co.kr/457329?_fr=mb2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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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함께 잘 다니는 교회 (5)  “교회의 88만원 세대  (2)”                Sep 10, 2013



들어가며


교회의 88만원 세대 (1)을 쓴 지가 2년 반 전이다.  2년 반 동안 (2)편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간혹하기는 했지만, 예전같은 간절함이 엷어져갔고 내 안에 기대감이 사라져갔다.  아예 '다시함께 잘 다니는 교회" 시리즈 자체를 2년 넘게 글 쓰지 못했다.  그렇다고 글을 일부러 안쓰려고 했던 것도 아닌다.  그동안 또 많은 일이 있었었다.  그러다가 한달전 즈음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이 블로그에 교회의 88만원 세대 (1)  글이 "명예훼손"을 했다고 하면서 게시물을 삭제요청한다는 것이었다. 신고자는 분당중앙교회의 대리단체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라는 곳이라고 했다. 나는 명예훼손을 할만한 글을 쓴적이 없는 것 같아 다음의 권리침해센터에 가서 문의를 하려고 갔더니 휴대폰인증 혹은 아이핀 인증을 하라는데... 저야 뭐 미쿡에 살고있으니 한국휴대폰이 없고, 아이핀인증이라는 것은 처음 보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었다.  한국은 참 이렇게 불편하구나 하는 생각과 티스토리를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백업한 자료가 있어 다시 (1)편을 올리고 나서 더 미루기전에 최소 (2)편만은 써보도록 하자 라고 생각하고 우선 자리에 앉았다.  


(1)편에서는 88만원(혹은 그보다 좀 적은 액수)을 받는 평신도 사역자에 대한 글이고, 이번 글에서는 교회내의 88만원 세대의 핵심인 부교역자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전도사나 레지던트 과정을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법학대학원, 의학대학원, 신학대학원... 이 세곳의 공통점은 전문대학원이라는 점 외에도 학비가 무척 비싸고 장학금의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나서 졸업하고 나서는 공통적으로 라이센스를 따거나 딸 수 있는 자격을 부여 받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의대에서 공부하면서 미국의 인턴과 레지던트의 삶이 한국에서 보던 예비의사들의 삶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다.  물론 한국만큼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이 비인권적이고 비정상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노동의 강도는 미국의 다른 어떤 직업보다 심하면서 최하의 임금을 받고 수직적인 체계에서 쫓겨나지 않기위해 매진하는 모습은 한국과 그리 다른 것 같이 않아 보였다.  왜 그럴까?  미국이나 한국에서나 아니 세계 어디에서나 의사는 가장 존경받고 고수입과 명예가 보장되는 직업인데...  왜 이들은 진짜 의사로 데뷔하기 전에 이렇게 '학대'받고 '고통' 당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비정상적인 모습을 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물론 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추측하기로는 이 비정상적이고 고통스러운 '정해진' 시기가 지나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게 되고, 그리고 나서 그들이 받게되는 명예와 금전적인 보상을 생각하면 단 2-3년의 (혹은 3-5년)의 인턴, 레지던트의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몇 년간의 과정동안 노동조합을 규합해서 단체운동을 벌이기 보다는 비인격적인 대우와 최하의 임금을 받고 견디기만 하면 이전과는 비할 수 없는 '보장된 영광' 을 기다리는 것이 더 이익이지 않을까?  확실하게 보장되는 미래가 오기만 한다면야...  지금의 그통은 참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군대를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2년 2개월만 견디면 확실히 제대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전도사님들도  이와 상황이 비슷하다.  신대원 3년을 졸업하면 교단마다 다르지만 몇년간의 전도사 (강도사)의 시절을 보내고 안수를 받는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거나 어느정도 규모의 교회에 담임목사로 청빙받기 전까지는 너무나도 비인간적, 비인격적인 대우와 쥐꼬리만한 보수에 만족하며 온갖 노동력을 교회에,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담임 목사에게 제공하면서 무조건 충성을 해야 한다.  왜 그럴까?  그들도 담임목사가 되면 확실하게 보장된 미래가 오기 때문일까?  하지만... 전문의와 달리 목사는 목사라고 다 존경받고 고소득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가 흔히 이름을 들어본 목사들, 연소득 1억의 너끈히 벌어들이면서, 자신이 소싯적에 똥구르마 끌었다고 자기 간증에 취해 사소한 곳에 목숨을 수시로 거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의 예비담임 목사님은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렇게 대우를 해주는 중대형 교회가 많지도 않을 뿐더러 요즘에는 그 수도 줄어들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주변에서 가끔 나이가 30대 후반, 아니 40대와 50대,,,  심지어 60대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목사의 길을 걷는 분들을 볼 수 있다. 김두식 교수의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잘 나가던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갑자기 하나님의 위해 살겠다고 신학교로 들어가는 스토리가 기독교방송이나 극동방송 라디오에 늘 나온다는 이야기...  근데 왜 불교나 천주교 혹은 다른 종교에서는 나이들어 사역자의 길을 걷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뒤늦게 사역자의 길을 걷는 분들이 유달리 개신교에서는 많은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뒤늦게 나이들어 법조인, 의사의 길을 걷겠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이 왜 나이들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그렇게 많을까?  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이들어 뒤늦게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사람은 없을까?


역시 잘은 모르지만, 쉽게 생각해보면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의대 (혹은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은 쉽지않다.  경쟁률도 높고 이른바 문과와 이과의 가장 점수가 높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인데...  나이들어 머리도 굳어졌는데 그들과 경쟁해서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들어간다고 해도 나이가 어느정도 있으면 가정이 있어 가족을 부양을 해야하는데...  공부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학비는 일반대학원의 몇배가 된다.  한마디로 나이들어 인생의 전환점에서 다시 '의사가 되겠어' 혹은 '변호사가 되겠어.' 라고 잘 결심하지는 않는다.  현실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천주교의 경우, 아무나 신부나 수녀님이 될 수 없다.  소수중에 소수가 엄격한 심사로 뽑혀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과정은 처음부터 수련의 과정이 된다.  30대가 넘어 신부와 수녀가 될 수 있는 길이 없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불교의 스님이나 비구니는 아예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는 것이니 (삶 자체를 벗어나 산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더 이상 말할 바가 아니다.  물론 나이들어 얼마든지 머리밀고 스님이 될 수는 있지만 기독교 사역자와는 달리 속세를 떠나야 한다. 


신학대학원은 다르다.  물론 몇몇 신학대학원의 M.Div. 과정은 경쟁도 치열하다고는 하지만 의대와 법대에 비할 바는 아니며... 무엇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수많은 신학대학원이 즐비해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나 들어 갈 수 있는 곳이 신학대학원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어쨌든 들어가기가 어렵지 않다.   게다가 들어가기만 하면, 아니 신대원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그 날로 바로 '전도사님'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 사역을 할 수 있다.   주로 주말과 주일에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부교역자로의 수입이 생기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충분한 액수는 아니지만...  어쨌든 길은 있다.   풀타임으로 공부해도 살아남기 힘든 법대, 의대 대학원과는 달리 신대원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사역을 한다.  


그렇다고 신학이 의학이나 법학보다 공부하기가 쉬운가?  글쌔... 내가 보고 듣기로는 가장 어려운 학문으로 늘 손가락으로 꼽히는 학문은 신학이다.  가장 오래된 학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가장 방대하고 깊이가 측량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혹자는 학문의 제왕이라고 한다.)   물론 신대원은 학문으로 신학을 한다라기 보다는 전문사역자를 키워내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방대하고 심오한 신학이 결코 쉬워지지는 않는다.   미쿡에서도 가장 공부가 어렵고 그 기간이 길기로 유명한 분야가 신학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학박사라고 하면 우선 고개 숙인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시다.  (한국의 많은 유명한 목사님들이 가지고 있는 수업을 듣고 시간만 때우며 받는 목회학 박사들은 예외다.  - 물론 정말 어렵고 힘든 제대로 된 목회학 박사도 있지만...  찾아보기가 쉽지않다.   --;; )   기본적으로 헬라어 히브리어에 각종 외국어는 기본으로 깔고 공부해야 하는 신학에 대해서는, 독일에서 신학박사를 하기위해 시간이 너무 걸려 학위 중간에 의사 자격증,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오는 신학박사과정 학생들도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대신한다. 



나가면서


글이 길어질 것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다.  --;;  일단 길이 길어져서 여기서 자르고 (3)편에서는 부교역자들의 실상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너무 글이 길어지면 쓰기도 읽기도 힘든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도 글이 너무 거칠어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도 그 앞에 있는 (3)편의 즐거움을 위하여 (2)편의 과정을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할란다.  ㅎㅎ


*어떤 태클이나 문제제기를 환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기에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은 잘 알고있다.  


**사법시험이나 사법연수원, 로스쿨쪽도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쪽은 너무 몰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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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함께 잘 다니는 교회 (2)  “교회의 88만원 세대  (1)”                        Jan 26. 2011

                                                                                                                                              

 

 

 

들어가며

 

최근 한국에서는 ‘88만원 세대’ 라는 책을 통해 20대의 비정규직 문제가 큰 화제였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임금 119만원에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한 액수가88만원이고, 앞으로 20대의 95프로가 이 88만원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비극적인 상황을 그렸다고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지 못하여 아무래도 책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 ‘88만원 세대’는 20대의 젊은 비정규직을 지칭하면서 앞으로의 암울한 자본주의하에서의 한국의 경제적인 전망을 그리고 있는 새로운 용어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88만원 세대가 존재합니다.  이 새로운 용어는 기존의 88만원 세대와는 달리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의 88만원 세대는 그 액수인 88만원에 근거하여, 주로 교회내의 비정규직이라 할수 있는 부목사, 전도사, 성가대 지휘자와 반주자, 찬양팀의 리더와 악기연주자, 한글학교 교사  등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교역자(부목사와 전도사)와 평신도사역자 (성가대, 찬양팀, 한글학교 등)은 성격을 약간 달리합니다.  전자가 비정규직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88만원정도의 액수에 근거한 분류입니다.  그래서 이번 글과 다음글은 이 두 분류를 나누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이 글은 88만원(혹은 그보다 좀 적은 액수)을 받는 평신도 사역자에 대한 글이고, 다음 주에 교회내의 88만원 세대의 핵심인 부교역자에 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오래전 스카우트의 기억

 

10년정도 교회에서 찬양팀으로 활동해 왔던 저는 대학교 졸업반 즈음에 제가 다니지 않는 다른 교회로 부터 귀가 솔깃한 제안을 몇번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교회의 찬양을 인도해 달라라는 일종의 스카우트 제안이었고, 거기에 상응하는 물질(장학금형식의 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다니고 있는 교회를 옮기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고 돈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아닌것 같은 생각에, 길게 생각하지 않고 거절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돈을 받고 한다는 것도 꺼림직했고, 제가 무슨 돈을 받을 만한 전문성(?) 또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무언가 이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례? 사례!

 

결혼과 함께 교회 청년부를 졸업하고 장년부와 제직에 진입(?)하게된 저는 이전과는 많이 다르게 교회의 모습을 실제적으로 볼수 있었습니다.  그것중에 하나가 교회에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경험이 아주 제한적이겠지만 한번 제가 관찰한 사항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1. 대학에서 음대에 입학한 A는 입학과 동시에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가 됩니다.  그리고 지휘를 하는 댓가로 한달에 30만원 정도를 받기로 했습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전공과 관련하여 장학금 형식을 받는 것같아 좋았고, 이전에도 성가대 지휘를 하면 사례비를 받는 것으로 알고있기에  A는 별 생각없이 감사하게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았습니다.  

 

2. 중형교회에서 성가대지휘자와 반주자를 모집한다고 공고를 합니다.  공고의 내용은 아주 추상적이지만,  지원서 형식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그 지원서 형식에서는 자세한 가족사항과 전공과 음악사역의 경험, 목사님의 추천서 까지 내야합니다.  몇 주 뒤, 치열한 경쟁 끝에 현 대학교 음대교수인 B가 성가대의 지휘를, 교회일에 헌신적인  C권사님의 따님이 반주를 하게 됩니다.  B교수와 C권사님의 따님은 각각 교회에서 120만원, 50만원 정도의 사례를 매달 받게 되었습니다.   당회는 지휘자의 학력이 마음에 들었고, C권사님의 봉사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B교수님은 교회에서 2시간 거리에 살았지만, 지휘를 위해 교회 근처의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3.  한 교회에서 찬양팀을 인도하는 대학원 유학생D는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교회에서 사례를 조금 하기로 했다며 월 200불 정도의 금액을 장학금 형식으로 D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D는 생각지도 않은 사례에 여러번 거절했지만, 교회에서 결정된 사항이라며 받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D는 사례를 안받을 수 밖에 없게 되자, 받은 사례를 그대로 감사헌금으로 매달 교회에 헌금하기로 했습니다.  

 

4. 교회에서 예배부장을 맡고있는 직장인E는 교회로 부터 매달 일정 액수의 사례를 받습니다. E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사역을 하고 있는 전신도가 교회로 부터 어느정도의 사례를 받습니다.  E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부장집사나 심지어 성가대 파트장들도 다 받기때문에 그냥 당연한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5. 비정규 연구직인F는 경제적인 어려움 당하고 있는 와중에 출석하고 있는 한인교회에 한글학교 교장을 하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전공과도 관련이 없고 관심도 없지만 한달에 몇백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교장을 하고싶어 했습니다.   거기에 비록 전공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아내를 한글학교 교사로, 성가대 반주자로, 그리고 각종 예산을 약간 전용하여  한달에 1000불이 훨씬 수입으로 3년만에 빚을 청산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게 되었습니다.  F는 자신이 비정규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일을 놓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6.  한 미국의 대학의 지휘과로 유학을 오게된 예비 유학생 G는 입학도 하기전에 그 주립대의 한인학생 홈페이지에의 구인구직 란에 파트타임으로 지휘를 하겠다며 공고를 냅니다.

 

공고의 내용은

__________________

안녕하세요, 이번에 OO으로 유학을 떠나는OOO 입니다. OO대학에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OO에 가서 지휘로 봉사할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한국에서도OOO에서 5년간 열심히 모교회 섬기듯 섬겼습니다.이곳에서 좋은 교회를 만나 미국에서 계속 열심히 신앙 생활 하며 교회를 섬기길 원합니다. 많은 연락 기다릴게요 

간략한 이력을 남기겠으니 참고해 주세요.

2010년OO 입학 예정

2009년OOO지휘 콩쿨 1등

2009년OO지휘콩쿨 우승 및 연주 (OO아트홀)

2009년OOO 합창 지휘 전공 졸업(수석)

2009년 제 4회 신인연주회 지휘부분 연주.

2008년 제 1회OOO주관 합창 지휘콩쿨 동상.

_____________

 

G는 몇몇 교회의 전화를 받게 되었고, 한 교회의 담임목사와의 면담후에 채용이 결정되어 미국에 오자마자 감사하게도 바로 사역을 하게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례를 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위의 6가지의 사례는 제가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넓게 공통점을 찾아보면,

 

1) 교회에서 받는 사례가 자신의 주수입원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례가 없어도 생활 자체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차차 이 사례에 기대게 되어, 이 사례가 없으면 생활이 점점 어렵게 된다.

 

2) 처음부터 교회로부터 사례를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자신의 전공이나 형편에 따라 사례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3) 처음에는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이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했을 지라도, 다른 교회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사례를 받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4) 교회에서는 특정 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례를 함으로써 나름의 전문성을 높이고 매주 예배에 반드시 출석하여 사역을 이어가게 할수 있게 되었다.  사례를 받는 사람들은 가급적 예배에 반드시 참석하여 그 역할을 기대할수 있다.

 

5) 교회에서는 사례비를 통해 경쟁력있는 인재를 구함으로써 여러 다른 교회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수 있다.  또한 그 사례를 받는 사람이 교수나 고위관리라면 보기에 더 좋기에 교회의 이미지도 좋아진다.

 

 

 

 

안받으면 어떻게 될까?

 

흔히들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의 여부를 프로와 아마추어에 비교하곤 합니다.  돈을 받는 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구분이 교회에서도 유효할지는 의문입니다. 

 

만약 위의 예시중에서 사례를 안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좀 더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사역을 하게 될까요?  아니면 그 사역을 맡기로 한 사람이 자주 예배에 빠지게 되어 예배에 곤란을 겪게 될까요?  그 사역을 하는 사람이 생활고에 빠지게 될까요? 

 

개척교회나 소교회의 경우, 전문적인 사역 (주로 음악)을 할 충분한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사례여부와 상관없이 사역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나 중형교회 이상은 아무래도 교회안의 성도 중에 그러한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교회에서 사례가 없다고 하면 전문적인 사역들을 어떻게 될까요?  사역을 중단하거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될까요?  아니면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만 사역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교회내의 사역은 누가 하는 것이며, 왜 하는 것일까요?  돈을 받고 안받고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며 어떠한 결과를 가지고 올까요?

 

확실한 것은 교회내에 이러한 사례를 하지 않는다고 그 이유로 교회 역사에서 예배가 중단된적은 없었습니다.   

 

 

 

돈을 안받으면 어떨까요?

 

신학적으로 레위인들은 일을 하지 않았기에 사례를 받는 근거가 있다느니, 혹은 성전에서의 봉사는 신도로서의 자발적이어야만 하는 것이여만 한다느니 하는 것을 여기서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보다 훨씬 탁월한 분들의 견해와 주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냥 저의 제안은 단순히 돈을 받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 돈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헌신정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생활이 힘들어지지 않는다면, 안받으면 어떨까요?  받고 도로 헌금하는 것 말고, 그냥 아예 안받으면 안될까요? 

 

마태복음 6장 1-6절에 보면 사람앞에서 보이게 의를 행하거나 기도하면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나옵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 시리라

 

앞선 5장에서도 보이게 금식하는 것은 역시 이미 상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금식과 기도, 구제와 의를 행함이 그러하다면,  이 구절을 사례를 받는 사역자에게 적용하면 너무 무리한 적용이 될까요? 

 

수많은 자발적 봉사단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례없이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들여 봉사하고 이웃을 섬김니다.  교회는 자발적 봉사단체도 아니고, 파트타임직을 만들어내는 직장도 아닙니다.  그 돈으로 더 많은 이웃섬김과 선교, 그리고 구제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교회나 성가대 지휘자는 사례를 받아왔기에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 그것을 이상하고 낯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비단 저뿐일까요?  교회안의 88만원을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성도들이 그 88만원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교회 밖의 이웃들에게 나누고 함께하면 약간의 전문성은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배에서 성가대의 화음이 좀 삑사리가 나고, 찬양인도자가 음이탈을 하고, 반주자가 반주를 좀 틀리면 은혜가 떨어질까요?  그것보다는 예배를 사랑하고, 하나님 찬양하기를 사모하고, 열정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사역하는 사람이 전문성있고 전공하는 사람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더 기쁘시지 않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가면서

 

다음 번에는 이 논의의 핵심인 부교역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비정규직 중에 비정규직, 88만원보다 어쩌면 더 적은 돈을 받으면서 사역하는 부교역자들.  힘도 없고, 목소리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그들에 대해서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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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7. 01:21 비만과 건강

비만과 건강 (8) 세살 비만이 여든 비만까지...

Barker Hypothesis 라는 아주 유명한 가설이 있습니다 (http://www.thebarkertheory.org/) 1989년 영국의 역학자인 Barker는 태어날 때의 몸무게와 관상 동맥 심장질환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표합니다.  즉 태어날때의 몸무게가 적을 수록 어른이 되어서의 심장질환의 발생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즉 태아기에 어떤 결정적 시기가 어른이 되어서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으로 확대되어 태어날때의 몸무게가 적을 수록 어른니 되어서의 고혈압, 당뇨, 중풍등의 발병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동물실험을 통해서는 이미 입증된 바가 있고, 여러 코호트 스터디를 통해서도 많은 증거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이러한 Barker's Hypothesis를 근거로 소아비만과 어른비만간의 관계도 많은 연구들이 있었고, 지금은 소아비만이 어른의 비만으로 직결된 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아닌 경우도 당연히 있습니다.)

저의 딸, 초등학교 1학년인 하원이는 도시락을 싸갑니다.  물론 학교급식이 있기는 하지만 학교급식이 맛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달라고 엄마에게 늘 조릅니다.  언제 하원이 학교에 가서 하원이 학교 급식을 같이 점심으로 먹어본 적 있었는데... 그제서야 왜 하원이가 엄마에게 점심을 매번 싸달라고 한지 알게되었습니다.  정크푸드 위주의 정말 맛대가리 없는, 성의없는 음식 위주로 정말 저같이 입맛이 늘 돋는 사람조차도 먹고싶지 않은 고칼로리 음식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 학교 급식에서의 야채와 과일, 곡식물로 만든 빵등의 건강한 음식을 위주로 공급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중간에 피자가 야채로 분류되기도 하는 웃지못할 이야기들도 있지만...  --;; ) 이러한 소아비만을 예방하는 정책의 배경에 퍼스트레이디인 미쉘 오바마가 막후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하면 부질없지만... 참 멋있는 퍼스트 레이디입니다.

Barker's Hypothesis가 확대되면서 어린시절의 건강이 어른의 건강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 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어린시절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영양결핍이나 부족을 겪을 경우에는 어른이 되어 상류층이 되어서도 건강수치가 무척이나 나쁜 것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좀 새고, 두서가 없지만...  결론적으로, 어린 시절에 비만은 어른의 비만으로 직결될 확률이 무척 큽니다.  그래서 저와 저의 안해의 고민과 신경은 늘 저희 두 딸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빠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They will double the amount of fruits and vegetables children are served in school and will require that all grains served are whole grains."   http://nyti.ms/w4u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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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6. 01:35 비만과 건강
비만과 건강 (7) 비만은 차별적인 전염병입니다.

 
(아침에 아래 링크의 신문기사를 읽고 조금 연재순서를 바꿔봅니다.  --+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252158235&code=940601  


한국의 재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근 조사결과를 인용한 신문기사가 나왔네요.  (링크는 제일 아래에)

이 신문기사의 내용은 (WHO 조사기록 내용)은 거의 다 맞는 편입니다.   비만이 질병이라면, 그 질병에 나라별로 인종별로, 그리고 사회계급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지요.  더 재미있는 현상은 거의 모든 질병과 건강이 이렇게 나라, 인종, 사회계급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건강과 질병의 문제가 나라별, 인종별, 사회계급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크게 상식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굶지않을' 정도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우선 유지해야 기본적인 건강이 확보됩니다.  '굶지않는' 수준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확보되면 그 때부터는 조금 다른 수치들이 동원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 사회 내의 불평등의 수준이 어느정도 되느냐가 관건이 되는 편입니다. (이런 연구는 주로 영국에서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자신들 국가안의 인종별 이슈에 주로 치중하구요). 일본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근처의 국가들이 평균수명이 가장 높은 것은 그 나라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덜한것과 아주 밀접한 관계성이 있습니다. 미국내의 50개주별 비만의 정도를 살펴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른바 사회경제적으로 못살고, 경제불평등이 심할 수록 비만인구가 많습니다.  주로 미국 남부의 주들입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인종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특정 인종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있다는 뜻으로 아주 거칠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보통 미국내에서는 흑인의 건강수치가 아주 좋지않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거지는 히스패닉과 아시안은 흑인과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다뤄보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아주 거칠게 부자가 건강하고 오래살고,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이 안좋습니다.  여기서 부자란 단순히 돈이 많다기 보다는, 돈이 충분하게 있기에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확보되며, 신선하고 좋은 음식을 사먹고 해 먹을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며, 기본 의식주로 인해 위협받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것도 역시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서론만 길었습니다만... 그럼 비만이 질병인가?  뭐 의학적으로는 모르겠고, 제가 공부하는 분야인 Public Health 혹은 Epidemiology 쪽에서는 질병을 넘어 epidemic (유행성 전염병)으로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신문기사에서도 세계적 전염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전세계인구의 50프로가 비만인구가 될 것이라는 데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인구 50프로가 비만인구가 된다면, 그것은 전염병 정도가 아니라 전시상황이지요. 

서론만 드립다 말해놓고 다음에 더 다루겠다고 해놓고 결론 맺습니다.  --;;  (길게 쓰면 안읽습니다...)  비만은 질병, 그것도 전염병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호흡기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전염되는 병이 아니고, 사회경제적으로 "차별적"으로 전염되는 질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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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5. 08:02 비만과 건강
비만과 건강 (6) 각종 다이어트, 운동... 다 부질없습니다. 

2007년 Franz와 그의 동료들이 Journal of the American Dietetic Association 라는 저널에 그동안의 각종 다이어트 혹은 체중감량 스터디들을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라는 방법을 가지고   발표합니다.  ( http://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02822307014836 )

이 논문은 기존의 논문과 조금 다른 것이, 보통 체중감량 연구들과는 달리 최소 1년이상의 weight-loss–focused randomized clinical trials 을 1960-2000년에 걸친 80편을 정리해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보통의 체중감량 연구는 3개월, 6개월이 보통입니다.  

 
그 80편의 스터디들은 각각 diet alone, diet and exercise, exercise alone, meal replacements, very-low-energy diets, weight-loss medications (orlistat and sibutramine), and advice alone 등의 방법을 써서 체중감량을 시도하고 초반 6개월간은 성공과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24개월을 지나 최장 48개월까지 추적해보면 3-6킬로 감량으로 미비합니다.  (물론 3-6킬로 감량도 대단하기는 합니다만...) 첨부된 그림을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http://ars.sciencedirect.com/content/image/1-s2.0-S0002822307014836-gr1.jpg


즉 장기적으로 볼 때,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다이어트의 방법이 단기간의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간의 효과는 극히 미약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드뭅니다.  성공하고 2년, 4년을 넘어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지만, 보통 그런 분들은 TV에서 광고모델을 하시거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곳에 출연하는 분들입니다.   드물게 있습니다만... 그분들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신기하고 대단한 분들입니다.  3개월, 6개월은 노력하면 어느정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만...  2년, 4년을 넘어 장기적으로 성공하시는 분들은 정말 극히 드뭅니다.   어떠신가요?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정말 그렇습니까?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나온 것이 수술입니다.  위장이 일부를 잘라내거나 위에 밴드를 하는 방법등이 있습니다.  다음 회에 수술에 대한 것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01.2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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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5. 02:32 비만과 건강
비만과 건강 (번외편): 나의 몸은 성전, 그러면 식스팩으로?


잠간 쉬어가는 의미에서 번외편을 마련했습니다.  ^^;;
(참 논문 안써집니다...  흑!)

이미 짐작하시는 분은 짐작하시겠지만, 이 시리즈는 학문적으로 정설이라고 전혀 할 수 없는 내용이 계속적으로 주를 이룰 것 입니다. 물론 학문적 연구로 뒷받침 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흔히 상식이나 사실로 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배경은 저 개인적인 개인적 사회적 육체적 영적 경험을 기초로 하여 시작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무척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에 다른 분들에게도 그러한지 한번 알아보기 위함도 한 목적입니다. 

각설하고...  저 같은 푸짐한 사람들은 가끔 성경을 읽을때 특정 구절을 통해서 강력한 다이어트와 체중감량의 압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을 두 곳만 뽑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장 1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 전서 6장 19-20절)


이 두 구절을 한마디로 너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이니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거나 영광을 돌리라는 구절입니다.  뭐 저는 성서학자나 성경학자가 아니기에 이 구절에 대한 자세하고 깊은 의미는 생략합니다. (솔직히는 잘 모릅니다. --;;)

근데 이 두 구절을 읽으면 저의 탐스러운 몸매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저야 아제 저의 몸을 상당히 사랑하고 용납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이전에는 이런 성경구절을 읽으면, 웬지 빨리 다이어트 하고 살을 빼어 보기좋은 몸매로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솔직히 식스팩있고, 들어갈때 들어가고 나올때 몸매가 들어갈때 나오고, 나올때 나온 몸매보다 보기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보기도 좋고, 그런 몸매는 벼락치기가 아닌 각고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가꾸어야 하기에 웬지 더 하나님의 성전에 가까운 생각이 듭니다. 

식스팩이나 복근은 없더라도 마른 몸매가 그래도 푸짐한 몸매보다는 더 하나님의 성전같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더 이상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강력한 다이어트나 체중감량의 의무나 당위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그런 의무를 느낍니다. ^^)  자식을 키워보신 분들이라면 느끼신 적이 있겠지만, 자식이 좀 인물이 못났거나 혹은 뚱뚱해도 부모의 눈에는 그것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고슴도치도 지 자식은 이쁘다는데...  자기 자식은 누가 뭐래도 이쁜 법입니다.  제 딸래미가 미스유니버스급 몸매를 가지고 팔등신이 아니라도 저는 충분히 저의 딸래미들로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이왕이면 팔등신이면 더 좋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래도 그것이 제가 제 딸을 바라보는 데 있어 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은 확신합니다. 

그러면 왜 저는 왜 위의 두 성경구절같은 곳에서 이전에 왜 제 몸은 하나님의 성전 아닌거 같고 웬지 산제사 드리거나 영광돌리기에 적당치 않다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3편에서 언급한 것 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뚱뚱한 사람은 자기절제가 모자른 충동적이고 육체적인 사람으로 비쳐지고 또 그렇게 여겨지게 되는 시선을 용인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절제가 부족하고 육체의 소욕(식욕)을 충실하게 따르는 몸이기에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에는 하나님께 영광돌리기에는 무언가 좀 부족한 몸매인 것이죠...

뭐 그렇게 생각할 요소는 충분하다고 할 수있습니다만... 저는 더 이상 이러한 성경구절로 인해 제 몸이 성전 아니고 영광 못돌리는 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깊이있는 논의는 성경학자나 목사님들께 맡기고...  저는 한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무절제하고 육체의 소욕에 속절없이 약하게 보이는 뚱뚱한 몸보다 더 안보이는 곳에서 무절제하고 육체의 소욕에 속절없는 몸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제 몸이 식스팩있는 2PM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하나님은 저를 판단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제가 2PM 보다 못할 건 또 뭡니까? --;;)

하나님이 그렇게도 외모와 식스팩을 중시하신다면 만약... 저는 당장 모든 것을 그만두고 생명을 건 단식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안에 들리는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먹어라, 근데 적당히... 제때 제 끼니 잘 챙겨먹고 열심히 살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님 말고요...  ^^;;

2012.01.24
posted by paulusnam
2012. 1. 24. 16:02 비만과 건강
비만과 건강 (5) 키과 몸무게는 한 세트입니다. 


이번 꼭지는 아마 제가 연재하는 이 시리즈 중에 가장 논리적, 학문적 근거가 없는... 가장 자신없는 글이 될 것입니다.  아마 이 글에서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학문적으로 입증 혹은 옹호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거나 있어도 별 신통치 않을 것입니다.  그냥 통빡으로 생각해 보자라는 것이 도입부입니다.  ^^;;

키와 몸무게는 쌍으로 갑니다. 한 세트같이 같이 가지요.  키는 남자 여자의 경우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강 20세 이후 거의 고정적이 됩니다.  물론 장년과 노년이 되면 키가 약간 줄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키는 전 생애에 고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무게는 고정적이지는 않습니다.  20대 이후, 남자는 주로 결혼 이후, 여자는 폐경기 이후, 급격히 느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몸무게가 고정적이지 않다고 해서 언제나 오락가락 하게 왔다갔다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도 보통 자신의 일반적인 고정몸무게가 있는 편입니다.  몇끼 굶었다고 혹은 몇끼 두그릇 먹었다고 쉽게 빠지거나 찌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다라고 우기실 수 있습니다. --;;)

이 시리즈의 첫회에서 언급했던, 비만을 측정할 때 주로 쓰이는 BMI의 경우도 역시 키와 몸무게를 같이 이용합니다.  키나 몸무게 하나 만으로는 그 사람의 건강의 정도나 신체의 특징을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100킬로가 나간다고 뚱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키가 188 정도 되면 보기가 아마 좋을 것입니다.  이렇듯 키와 몸무게는 세트로 갑니다. 

그런데 제가 3편에서 주장하듯...  키가 크거나 작은 것으로 비난하거나 그 사람을 키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키라는 것은 어느정도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곰국먹고 혹은 줄넘기 많이 해서 키 컸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거 다 해봤지만 아무 소용 없었던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몸무게도 어느정도 타고나는 측면이 있습니다.  체질적으로 마르거나 좀 풍성한 사람이 있습니다.  통뼈라 하는 사람도 있고, 집안이 전반적으로 가볍거나 무거운 집안이 있습니다.  키처럼 만큼은 아니지만 저는 몸무게도 상당히 고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몸무게를 키 대하듯이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둘이 결코 다른 성질의 개념이 아닐 거라는 잠정적 결론을 가지고 이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든지 예외는 있습니다만...  몸무게도 상당히 고정적인 편입니다.  다음편에 체중감량과 다이어트, 요요현상 등에 대해 한번 다뤄보겠습니다. 


posted by paulusnam
2012. 1. 24. 15:09 비만과 건강

비만과 건강 (4) 어린시절의 비만과 부모의 영향?

가장 최근에 발표된 아주 흥미로운 논문 두편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첫번째는 "Childhood obesity and risk of the adult metabolic syndrome: a systematic review" 이라는 제목으로 International Journal of Obesity 에 2012년 첫호에 실린 논문입니다. (http://www.nature.com/ijo/journal/v36/n1/pdf/ijo2011186a.pdf)

이 논문의 요지는 어린시절의 비만과 어른이 되서의 혈중지방질, 인슐린레벨, 메타볼릭 신드롬, 당뇨병과는 별 관계가 없고 오히려 이 연구결과에서는 어린시절에 비만이 어른때의 메타볼릭 신드롬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어린시절의 비만과 어른이 되고나서의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등이 별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라는 뜻입니다. 즉 어릴 때 뚱뚱했다고 어른이 되어 그 뚱뚱함으로 인한 질병징후나 질병과는 별 상관이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는 역시 같은 저널 같은 호에 실린 "Preventing and treating childhood obesity: time to target fathers" 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http://www.nature.com/ijo/journal/v36/n1/pdf/ijo2011198a.pdf)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56345 그 논문에 대한 신문기사입니다.)

이 논문의 요지는 아빠가 비만일 경우, 그 자녀가 비만일 경향이 높다라는 연구결과입니다.  아빠보다 엄마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즉, 부모의 (특히 아빠의) 비만여부가 자녀의 비만과 직결된다고 하는 연구입니다. 


이 두 가지의 연구는 얼핏 다른 것 같이 보이지만 거칠게 해석해보면,  그것은 첫째, 비만이라는 것 (주로BMI로 측정하는) 이 어쩌면 반드시 건강하지 않다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것이며, 둘째, 그것은 환경보다도 어떤 주어진 (유전자적인 요인, 즉 타고나는) 것에 의할 수도 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반대의 해석도 가능하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첫번째 논문의 경우, 어린시절의 비만인 아이가 비만이기에 더 건강에 힘을 쏟았다라고 역비판을 세워볼수도 있고, 두번째 논문의 경우, 아빠의 유전적 요인보다는 아빠의 운동이나 생활습관, 식습관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역주장을 역시 제기할 수 있기는 합니다.  --;;


자! 다음 번에 조금 더 나가 보겠습니다.  ^^


2012.01.24
 

 
posted by paulus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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