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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다니는 교회... 그리고 다시 기도하고 생각해보는 함께 잘 다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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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2 (번외편) “침묵의 동조이론 “2

 

다시함께 다니는 교회 (번외편)

침묵의 동조이론

2011-02-01

 

 

침묵의 나선이론

학부전공이 언론정보이면서도 무엇을 배웠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찬양을 원없이 했다라고 이야기할 밖에 없는 나에게, 남은 안되는 전공지식으로 기억나는 중에 하나가침묵의 나선이론이다.  침묵의 나선이론은 독일의 노엘레-노이만이 1966년에 발표한 이론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다수이면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소수라고 판단되면 입을 다문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현상이 회오리나선 모양으로 진행되면서 목소리만 소수의견이 대세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하였다.  노엘레-노이만은 매스미디어가 어떻게 권력을 갖게 되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이론을 내놓았지만, 나는 보다도 사람들이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다수라고생각할때표현하고, 소수일때라고생각할때침묵한다는 설명이 무척 인상 깊었던 같다.  이렇듯, 사회에서 소수의 생각이나 사상에 마음속으로는 동조하거나 동의해도, 생각이 소수인 처럼 보이기 때문에, 동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만 동의하고 인정하는 침묵의 나선이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너무나 무서울정도로 정확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최근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침묵의 동조이론

나는 여기서 보다 나의 모교에서의 벌어지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나의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침묵의 동조이론이다.  이론에 배경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생각과 의견이 다른 것에 대하여 그것을분쟁혹은하나되지 못함으로 규정하고 관용하지 못한다.  생각과 사상이 다른 대상이 힘이 없거나 소수이면, 쉽게 그들을 잔인하게 밟아버리고 하나님의 뜻으로 거룩한 전쟁을 치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반하는 자들은 그저 하나님앞에서 제거해야할 이방인들일 뿐이고, 그러한 어려움과 시련을 통해서 연단되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구현된다고 그들은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기에 포기와 타협은 없다.  따르던지 죽던지  그들은 자신들 만이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 힘이 있기에 절대 다수는 앞에서 침묵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다수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사실관계를 따져보자고’, ‘지금은 기도를 해야할 때다,’ ‘양쪽 잘못했고 문제가 있다고’, ‘이렇게 시끄럽고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그리고 공동체에 덕이 되지 못한다고,’ ‘이러한 일이 어떠한 여파를 가지고 올지 아느냐고?’  그리고는 침묵한다.  그것은 암묵의 동의다.  이것이 침묵의 동조이론이다.

 

 

 

필드스터디

아직 나의 최신 이론인침묵의 동조이론은 아직까지 연구가 거의 되지 않은 분야이다.  나도 분야를 연구하면서 선행연구가 없어 애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결국 이론을 경험하기 위해, 필드스터디를 나갔다가 비이성적인 폭력과 협박,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들어오는 위협에 고개를 돌려야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론의 선행연구자들의 연구는 많이 있지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오래된 고문서에서는좁은길이라고도 하고, 선행연구의 첫번째 필드스터디를 하신 선배님은 십자가인지 십자대 인지 라는 곳에서 능지처참을 당했다는 전설도 얼핏 들었던 같다.

 

 

 

탓할 없다

나는 다수의 침묵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몰랐다.  무서웠다.  있는자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들고, 자칫하면 밥그릇이, 가족이 위험해 질지도 모르기에 그러했다.  어떤 보다도 개인의 평안과 가정의 행복은 내가 지켜야만 하는 최고의 가치였다.  그래서침묵의 동조이론으로 보이게 유지되는 평화만 주장하는 힘있는 자들에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을 비난 없다.  그것도 자신들의 선택이다.  게다가 개인의 행복과 가정의 안전은 여전히 어떤 가치보다도 우선할 없고 양보할수 없는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을 비난할수 없고, 침묵의 동조자들을 탓할 없다심지어 초대 필드스터디를 나섰던 선배님도 사람들의 침묵을 탓하지 않으셨다.

 

 

 

후회

다만침묵의 동조이론을 실제로 경험한 필드스터디로 다녀온 이후, 옛날 이론에 매여 침묵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후회가 많이 되었다.  그때 누가 나를 탓하고, 비난했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필드트립을 나갈것이다.  내가 필드트립을 나간다고 해서, 무시무시한 이론은 절대로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침묵할 수는 없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 예전처럼 나는 이상 침묵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개인의 행복과 가정의 안전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있지만, 그것은 침묵한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드스터디를 다녀왔다고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기에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고, 사고도 친다.  그런데 그것이 두려워서 침묵을 하기보다는 다녀와서 실수를 반성하는 편이 낫다. 

 

 

 

여전히 이론은 강력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는 그러면 좁은 필드스터디의 길을 고민없이 두려움없이 같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그저 소시민일 뿐이다.  필드스터디를 다녀왔지만 지금도 자주 침묵하곤 한다.  지금도 두렵고 무섭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어서 가슴이 터질것만 같다.  다음번에는 침묵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고문서에 따르면, 초기 선행 연구자들이 당시 필드스터디에서 당한 협박에도 불구하고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없다라고 나와있다.  나는 선행연구자들의 고백과 첫번째 필드스터디를 선배를 믿는다. 

 

 

 

지금 침묵을 깨고, 필드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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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aulus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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