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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다니는 교회... 그리고 다시 기도하고 생각해보는 함께 잘 다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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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22. 16:11 함께 잘다니는 교회

 

함께잘다니는 교회 - 일곱번째  03/18/2010


짜장면이냐 탕수육이냐?


                                                                                                   남상곤

 


 

짜장면이냐 탕수육이냐?

 

김장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나라로 가게되었습니다.  천국문에 다다르자 예수님이 두팔을 벌려 수고했다 라고 맞아주셨습니다.  김장로는 상기된 표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이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구나하는 마음에 설레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까지의 먼 여정에 출출하겠다며 천국중화요리식당으로 김장로를 데려가서 짜장면을 시켜주셨습니다.  김장로는 예수님께서 직접 맞이해주신데다가 처음 맛보는 천국짜장면의 맛에 황홀했습니다.  천국 짜장면은 너무 맛있었지요.  그런데 반쯤 먹었을까, 옆의 자리에 같은 교회에 다녔던 김집사가 탕수육을 먹고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김장로는 너무 반가워서! 김집사 아닌가?  이거 너무 반갑네!” 하고 즐겁게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반가운 인사도 잠시, 김장로는 갑자기 예수님께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김집사는 더 비싸고 맛있는 탕수육을 먹고있는데 자신은 짜장면만 먹고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장로는 예수님께 섭섭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예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김집사는 집사고 저는 장로인데, 왜 김집사는 탕수육을 주시고 저는 짜장면만 주신 겁니까?” 하고 볼멘소리를 하자 예수님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김장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김목사배달나갔다.”

 

 

 

전 신자 제사장 교리

 

이 가상의 우스개 이야기는 우리에게 소중한 단초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는 웬지 집사-장로-목회자의 순으로 하나님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인양 생각하곤 합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 목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은 세상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천주교에서는성직()’ 라는 말을 씁니다만, 우리 개신교에서는성직()’ 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개신교에서는 성직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성직이고 모두가 제사장이지, 성직자라는 특수한 계급의 사람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로마카톨릭의 부패에 대항하여 일어난 종교개혁의 핵심중의 하나가 바로전 신자 제사장 (Priesthood of All Believers) 교리입니다 (흔히만인 대제사장교리라고도 합니다만, 저는전 신자 제사장교리라고 쓰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링크에 있는 김기현 목사의 글을 참조하십시오.)

 

전신자 제사장 교리는 말 그대로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제사를 드리는 역할을 감당하는 제사장이라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우리의 죄 때문에 제사장이 주관하는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고,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제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실때 찢어진 성소의 휘장은 이것을 상장적으로 잘 설명합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태복음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마가복음 15:38)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누가복음 23:45)

 

 

구약시대에 지성소에서는 대 제사장만이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만 들어갈수 있었던 것이 이제 모든 신자가 모든 날에 지성소를 들어갈수 있도록 개방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제사장의 집전하는 제사없이도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보혈의 공로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되었고,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며, 거룩한 민족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 모두를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더 이상 제사장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지않으며,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담대하게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5)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5:10)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전 신자 제사장교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이루신 일이며, 종교개혁을 통해 다시한번 강조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잘 실감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는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에서 지도자로 섬기고 있다는 점에서 구약의 제사장과 비슷한 역할을 주관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가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같은 권위와 신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의 본질적인 차이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목회자가 보다 전문적으로 목회를 하기 위해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훈련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평신도와의 아무런 신분적 차이가 없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 즉 분업의 차이이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똑같은 제사장일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목회자에게는 특별한 영적인 능력과 권위가 있고, 마치 구약의 제사장이나 선지자 같이 여기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목회자는 제사장이나 선지자라기 보다는 교회의 리더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예가 있어 직접 인용해 보겠습니다.

 

 

목회자는 반장일 뿐 선생님이 아닙니다. 반장은 선생님의 필요에 의해 특정한 역할을 맡은 한 학생에 불과합니다. 반장이 선생님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장은 그저 여러 학생 중 한 명입니다. 단지 특정한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목회자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반장으로 등장하는 엄석대처럼 선생님(하나님)의 권위를 자기 권위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목회자는 결국 엄석대처럼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남오성 ,” 교회 개혁 Q&A (1) 만인 제사장주의에 대하여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957

 

 

 

 

전 신자 제사장 교리가 그래서 뭐?

 

그러면 이제 전 신자가 제사장이며,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더이상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특수한 계급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지금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첫번째로 그것은 목회자보다는 평신도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목회자는 제사장이나 성직이 아니고, 목회자의 설교만이 하나님의 말씀선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은 여전히 목사의 설교만을 하나님의 말씀선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목회자의 설교나 성경공부에만 의존하여, 평신도 스스로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기도하는데 소홀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목회자의 설교와 새벽기도의 말씀을 듣고, 충분히 성경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목회자를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어, 평신도 스스로 말씀을 읽고 적용하고 스스로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하게 된다는데 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세 가톨릭교회처럼 신부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 스스로 성경을 펴서 오늘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가에 직접 응답하시기 원하십니다.

 

 

두번째로, 이제 믿는 모든 신자가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적의 권리를 목회자에게만 의존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제사장의 권리라면,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하셨던 중보의 삶을 우리도 동일하게 전도와 기도를 통해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이것을 목회자의 일이니 목회자에게만 맡겨두자 라고 하면 제사장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모든 덕목은 사실 믿는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야 하는 역할입니다.  섬김과 청빈, 그리고 순종과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일이 목회자에게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가 추구해야하는 삶인 것입니다.  목회자가 삶의 목표를 재물, 소유, 육체, 쾌락, 명예, 인기, 권력, 군림, 권위에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나라를 바라보듯이, 우리 믿는 신도들과 목회자 수준의 낮아짐과 섬김과 봉사, 정직과 실천, 자기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구약시대에는 제사(예배)가 성전을 통해서만 행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 되고, 우리 몸이 성전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대한 제사이자 예배가 되었습니다.  주일날 오전에 드리는 예배만이 예배가 아닙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의 우리 모든 삶이 다 하나님께 드릴만하고 기뻐하시게 할만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은 공부하다 죽으면 순교고, 직장인은 직장에서 직장일때문에 과로로 숨져도 순교가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 1)

 

 

 

 

마지막 질문

 

 

글을 맺으면서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목사로 평생을 봉직하고 천국에 간 목사와 그냥 평범히 한 가정의 주부로 평생을 지내고 천국에 간 주부가 있을때, 과연 누가 더 천국에서 더 큰 상급을 받을까요?  이제 어떠신가요?  지금도 목사라고 생각하시나요?  답은아무도 모른다가 정답입니다.  목회자라도 목회자의 일에 소홀하면 부끄럽게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주부라도 일상의 삶에 충실하면 하늘에서 가장 큰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둘다 제사장이요, 둘다 하나님의 자녀요, 둘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나가면서

 

이 꼭지의 글은 기본적으로 아래의 두 글을 크게 참조하여 썼습니다.  두 글의 내용과 형식을 적극적으로 참조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남오성 ,” 교회 개혁 Q&A (1) 만인 제사장주의에 대하여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957

 

김기현, “만인제사장인가, 전 신자 제사장인가?”

http://blog.daum.net/sionaba/9834391

 

 


목회자가 '엄석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함께잘다니는교회'(6) 다시 '전 신자 제사장 교리'로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2449

 

posted by paulus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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