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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다니는 교회... 그리고 다시 기도하고 생각해보는 함께 잘 다니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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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22. 16:10 함께 잘다니는 교회

함께잘다니는 교회 - 여섯번째  03/13/2010
 

하나님앞에서 모두가 겸손해야 합니다.


                                                                                                     남상곤

 

누가 문제였나요?

 

교회가 역사앞에 범죄를 저지른 일이 수없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것만 대표적으로 살펴봐도,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십자군 전쟁을 감행하여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노략질한 것,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성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고 무시했던 것,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노예가 합법한 것이며 열등한 종족이 있다고 하여 노예제도를 실시했던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땅을 개척하교 교회를 세운다고 아메리카에 인디언들을 수천만명 학살한 일 등등  가장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은 것도 당시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저지른 것입니다.

 

교회가 혹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저지른 어처구니가 없는 수많은 범죄들이 있습니다.  당시에 이러한 일들이 자행되었을때는 정말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혹은하나님을 위해서이런 일들을 거리낌없이 저지렀던 것 같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을 한 사람들은 이것이 왜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하나님께서 실수가 없으시고 온전히 선하신 분이심을 믿는다면 이러한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한 인간에 있음이 명확해 집니다.

 

 

인간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래전에는 카리스마나 전통에 따라 지배가 이루어지고 정당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모든 사회는 법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 어느 국가이던 헌법이나 기본규칙을 통해서 지배는 합법화됩니다.  국가는 상위법인 헌법에 의하여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헌법에 명시된 권력만을 대통령이 수행합니다.  이러한 통치자인 대통령조차 임기제를 바탕으로 할뿐더러, 대통령이라도 헌법과 위배되면 처벌받거나 탄핵될수 있는 것이 오늘날 입니다.  이전까지의 오락가락하고 일관성이 없던 카리스마적 통치나 전통에 의한 통치는 사라졌습니다.  이는 비단 국가에 국한된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단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각각 규칙에 따라 그 법규대로 운영이 이루어집니다.  회사나 학교도 정관이나 교칙에 의해 운영이 되고, 심지어 교회도 교회정관으로 운영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신뢰할수 없지만 글로 쓰여진 법은 신뢰할수 있다라는 가정이 깔려있습니다.  인간은 신뢰할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신뢰할수 없는 사람인것을 늘 느끼고 살아갑니다.  스스로 어떤 것을 하겠다 또는 안하겠다 계획을 세워 수십번 다짐하지만, 참으로 스스로에게 끝없이 관대하고 늘 용서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신뢰할수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함부로 생각하거나 무시해서 의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한계가 분명한 존재입니다. 이익 앞에서는 흔들리고, 강자앞에서는 약해지고, 약자앞에서는 강해지는  모든 사람은 다 연약하고 다 쓰러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사람을 믿을수 없기에 늘 권력이나 권위에 대해서는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굳이절대 권력은 절대 타락한다와 같은 경구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권력이나 권위는 늘 견제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힘이기 때문입니다.  힘은 지니차게 견제를 받아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힘이 한번 잘못 발휘되면 사람이 죽거나 다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최소한으로 실행되어야 하고, 최대한으로 견제받아야 합니다.

 

 

사람을 신뢰할수 없으면 우리는 누구를 믿나요?

 

1.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신뢰할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제와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익에 치우치시지 아니하시고 공평하고 완전하신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출애굽기 3:14)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잠언 16:11)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2.     그리고 씌여져 있는 성경을 믿습니다.  씌여져 있는 성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통치자가 바뀌어도 동일합니다.  그리고 성경 외에 있는 수많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의심하고 의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한 10:35)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후서 3:16)

 

 

3.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성경외에 모든 것이 틀릴수도 있다라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다 겸손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A가 맞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B가 맞을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신념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신념도 마찬가지로 존중을 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믿고 신뢰하는 믿음만큼이나 남들도 각자의 경험과 사고를 통해 믿고 있는 나름대로의 믿음이 있습니다.  자기가 맞다고 해서 (설사 맞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쉽게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는 참으로 위험합니다.

 

누구를 변화시키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몸으로 행함과 사랑입니다.  본질적인 복음을 인정하고 동의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한가지의 생각과 사상으로만 표현되고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본질적인 것에서는 일치를, in necessariis unitas,

비본질적인 것에서는 자유를, in non-necessariis libertas,

모든 것에는 사랑을. in utrisque caritas.

 

-리처드 벡스터의 개혁된 목사(The Reformed Pastor, 1656)-

 

 

 

교회에 일곱빛깔 무지개를

 

 

글의 서두에서 예를 들었던 교회가 역사에 행했던 범죄들도 그 이면에는 어쨌든하나님을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신념이 너무나 강했던 것 같습니다.  신념이 강할수는 있지만 그것을 타인에게 지나치게 강요하다가 돌이킬수 없는 역사적인 범죄가 된것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 자신과 다르다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실수할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그왜곡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일방적인 강요로 이르게될때 진정 우려할 사태가 일어날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성경을 펴고 각각 자신의 해석과 적용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부는 맞을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다 옳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을 이야기하기에 당연히 문제가 생깁니다.  누구나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늘 자신이 틀릴수도 있다는 겸손함과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부분, 부분일수도 있습니다.  무지개의 한 색깔만을 보고 무지개를 보았다고 하는 것은 때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곱가지의 색깔이 모여서 아름다운 무지개로 나타나듯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조금씩 표현될수 있을것 입니다.  한 부분을 가지고 전체인양 호도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한 해석을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여 적용하는 것도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될수 있습니다. 보통 말씀을 통한 적용은, 해석을 하는 그 자신에게 해당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중요한 우리의 문제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기보다는 본인이 깨닫도록 말씀과 상황을 통해서 이끌어 가심을 우리는 많이 경험적으로 목도한바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희미하게 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명하게 보게 될 때가 옵니다.  지금은 비록 불완전하고 충분하게 알수 없지만 그때에는 온전하게 하나님의 경륜과 뜻을 알게될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서로에게 겸손하고 늘 열린마음과 열린자세를 가져야 할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아름다운 일곱빛깔의 무지개가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교회에 일곱빛깔 무지개를...
'함께잘다니는교회'(5)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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